겪은 것2013. 3. 7. 21:52

 내 방과 맞닿아 있는 옆집에는 조선족 부부가 산다. 나이는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마 그보다 어릴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부부에 대해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계기는 약 3개월 전, 평일 밤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신입이지만) 당시 나는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였다. 야근을 마치고 밤 12시 경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는데, 옆집에서 중년 여성 서너명이서 매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지나면 잠잠해지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고, 피곤한 탓인지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별안간 "깔깔깔깔"하는 마녀같은 웃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로 옆집의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떠들어대는 것이었는데, 술이 들어갔는지 목소리는 더욱 커져 있었고,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옆집에 찾아가 조용히 해달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2시간 반 뒤면 일어나야 했으므로, 괜히 왔다 갔다 하면서 잠이 다 깨버릴 까 두려워 잠자코 있었고, 결국 난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날 회사에서 나는 너무나 피곤했고,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그 날 회식이 잡혀, 당시에 정말 죽도록 먹기 싫었던 소맥을 한 잔도 빼지 못하고 연거푸 마셔댄 뒤, 또다시 밤 11시 30분 경에 집에 도착하였다.

 

 취기가 가득 오른 나는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옆집으로 향했다. 밖에서 보니 불이 켜져 있어 "계세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연변 말투로 "누구세요?"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옆집에서 온 사람이라며 잠시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부부는 큰 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묻기만 하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현관 앞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 밤에 아주머니께서 너무 시끄러우셔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앞으로 평일에는 조용히 해주십사 말씀을 드리러 왔다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무엇이 그리 화가 나는지, "나는 모르는 일이오! 우린 그런 적 없소!"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굽히지 않고 "어제 부인께서 이야기를 늦게까지 하시더라구요. 앞으론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말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잘 준비를 하는데, 이번엔 남편과 아내의 싸우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대강 내용은 남편이 아내에게 자신이 없는 사이 또 친구들 불러서 밤 새 놀았느냐,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그 후로 옆집은 한동안 조용했다. 바로 어제, 그러니까 금요일 밤에 또다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이번에도 저번과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저번보다 강하게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듣고 있다가, 이번 싸움에는 그저 잠자코 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웬만하면 옆집이 조금 시끄러워도 가만히 있으리라 마음 먹었다.

 

 이번 고성방가의 내용은,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이었다.

워낙 조선족 사투리가 심해 내용의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짓이가…우리가 뉘 때문에 여기 왔는지 아는가… 너 이 자슥아…"하는 남편의 화난 목소리였다.

 

 아마도 부부는 고향에 자식을 남겨두고 둘만 한국에 와 돈을 벌고, 그 돈의 대부분을 자식의 학비로 송금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자식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부 외에 다른 일로 방황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안 부부가 화가 나 자식과 전화로 언성을 높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그 부부가 밤새 시끄럽게 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론 그저 묵묵히 잠을 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야 이렇게 싸이월드에 다이어리도 쓰면서 내 감정을 해소하고, 정 힘들 때는 연락해서 불러낼 친구들도 있지만, 내 바로 옆집에 사는 부부는 매일이 힘든데 정작 해소할 데가 없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 얼마나 어리광을 피워대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 2012.03.18 일요일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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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센트 방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