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2013. 4. 21. 03:43

 

 인간의 크나큰 싸움을 선악의 다툼으로 보는 고지식한 해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이 싸움을 비극의 조명 아래서 이해하는 것, 이것은 정신이 이룬 엄청난 성과였다. 이 성과로 인해 인간이 따르는 진리의 숙명적 상대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적을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를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도덕적 흑백논리의 생명력을 꺾어 버리지는 못했다. 전쟁 직후 프라하에서 봤던『안티고네』번안극이 생각난다. 비극의 비극성을 죽여 버린 작가는 크레온을 자유를 수호한 영웅을 짓밟아 버린 가증스러운 파시스트로 그리고 있었다.

 

 『안티고네』를 이처럼 정치적으로 구현한 작업들이 2차 대전 직후 상당히 유행했다. 히틀러는 유럽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비극이 나아가야 할 방향마저 뒤틀어 놓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동시대의 정치사 전부는, 나치주의에 대항하는 전투를 모범으로 삼아 선악 대결의 싸움으로 간주되고 또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전쟁, 시민 전쟁, 혁명 전쟁, 혁명, 반혁명, 민족 전쟁, 저항과 억압들은 비극의 영역에서 쫓겨나 징벌을 내리고 싶어 안달이 난 재판관들의 권위에 휘둘리며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이것은 퇴화일까? 비극 이전의 단계로 인류가 다시 추락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 경우에는 무엇이 퇴화되었던 것일까? 범죄자들에 의해 찬탈되어버린 역사 그 자체일까? 아니면 역사를 이해하는 우리의 방식일까? 나는 종종 우리에게 비극이 사라졌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징벌일 것이다.

 

- 커튼 (밀란 쿤데라 저), 2008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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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센트 방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