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을 모두 잃더라도 지키고 싶은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 연결은 때로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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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파우릭(아일랜드 발음으론 파우리'크'라고 하는데 이 발음이 너무 재밌다. 도미닉도 도미니'크'로 정확하게 발음하는데 된발음이 아일랜드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느껴진다)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콜름은 음악을 남기기 위해 절교를 선언하고, 시오반은 마을을 떠나 본토에 정착하고, 섬에서 가장 멍청(하다고 소문난)한 도미닉조차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아마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라 짐작되는데 이 노력이 좌절되자 그는 호수에 몸을 던져 '하려던 일-자살'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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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파우릭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영화에서 딱히 그의 아무것도 하지않음을 비난하는 느낌은 없다. 감독은 어쩌면 파우릭을 내세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이 틀린 것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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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2022), 마틴 맥도나 감독/각본,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 주연.
죽어가는 도시에서 노인들과 중년의 사람들이 쫓고 쫓긴다.
잘못된 방법으로 후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그들은
짐승들의 사체가 땅속에 묻혀 썩어서 만들어진 석유처럼 검은 피를 흘리며 죽고 다친다.
- 로스트 인 더스트 (데이빗 맥켄지 감독, 크리스 파인, 벤 포스터, 제프 브리지스 주연)
원제 : Hell or High Water, 2016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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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레플리칸트를 거울로 내세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깊이 침잠했다면, 원작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에서는 그 해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원제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전기 양도 아닌 '꿈'이다. 전기 양을 꿈꾼다는 것은 양, 즉 타인/타 생명체를 생각하는지에 대한 물음임과 동시에, 현재보다 나은 상태(양을 갖고 있는 상태)가 되려는 목표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머서교로 상징되는 감정이입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목표, 즉 꿈은 인간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화성에서 도망쳐 온 넥서스-6 기종들은 본인들의 행동, 자유를 찾아 떠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릭(데커드)이 그들을 퇴역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서 그들은 릭과 이지도어와는 다른 행동을 보임으로써, 감정 이입이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것을 더욱 부각시키며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한다.
영화와 달리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소설 내내 묘사되는 끊임없이 떨어지며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낙진으로 인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지구에서(소설속 표현처럼 모든 것이 '키플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나마 인간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공감, 즉 서로를 이해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원제 : Do Android Dream of Electric Sheep?) 필립 K. 딕, 1968년작
때로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짐이 된다.
길버트와 형제들에게 말없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장 소중한 짐이다. 어니가 아니라.
길버트 가족의 집은 길버트 형제들이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들의 실재다. 낡고 여기저기 부서지고 있는 집. 그들은 집을 불태운 뒤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덧. 이 영화에서 변화는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부터 시작 된다. 마을 엔도라는 무언가 새로이 생겨남으로써 변화한다. 푸드랜드가 들어왔고, 버거반이 들어온다. 그것도 다 지어진 채로.
다른 한 편으로 마을 주민들은 누군가를 떠나 보내며 변화를 시작한다. 남편 켄 카버의 죽음으로 베티 카버는 마을을 떠난다. 길버트의 가족들도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변하길 결심한다. 그리고 우연히 엔도라로(길버트에게) 온 벡키는,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양쪽 모두에 속한다.
- 길버트 그레이프 (라세 할스트룸 감독, 조니 뎁, 줄리엣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리 스틴버겐 주연), 1993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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