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은 것2013. 2. 25. 22:44

 차가운 공기가 머릿속을 투명하게 환기시켰다.

심해의 해파리처럼 부유하던 상념들이 하나 둘 씩 제자리를 찾아 가고

지난 여름같은, 열병처럼 앓았던 답답함은 딱 알맞게 식었다.

                                                                      

                                                              - 2011. 10. 17 월요일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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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개설  (5) 2013.02.21
Posted by 빈센트 방과후
생각한 것2013. 2. 23. 20:28

 "…처음엔 온 세상이 신기한 것 투성이에, 모든 것이 마냥 궁금하지.

나는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부터, 그녀는 내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는 등, 온통 수수께끼같고 스무고개 같은 시절이지.

 

 그 다음엔 세상이 온통 재미있어 진다네. 밤을 새서 술을 마시는 것도 즐겁고, 야근을 해서 항상 아내의 잠든 얼굴만 봐도, 큰 아이가 울어 잠 한 숨 못자도 그저 웃음만 나오는, 무얼 해도 즐거운 시기가 있지.

 

 그러다가 조금 더 지나면 세상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 집인 것 같고, 내가 하려고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네. 실제로도, 이 시기에 많은 것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엔 잃은 것보다는 조금 더, 한 줌의 모래만큼이라도 더 얻는 것이 있는 시절이라네. 

 

 그러다 조금 더 지나면, 조금씩 눈이 침침해지고, 버스에서 내릴 때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시기가 오면, 세상이 하나 둘 씩,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듯 하나 둘씩 마음 속에 두려움이 켜진다네. 그냥저냥 지나갔으면 싶고, 나만 아니었으면 좋겠고, 혹은 나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는, 간사함도 함께 내려앉지."

 

 남자는 노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마치 억센 손을 가진 농부가 꾹꾹 눌러 씨앗을 심듯 노인의 말을 가슴속에 심었다.

 

 노인은 여전히 남자가 있는 방향이 아닌 정면으로 나 있는 길가를 바라보며, 오래된 책장에서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고르듯 단어를 하나하나 골라가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말일세, 그 두려움의 시기가 지나가도록 꾸욱 참고 버텨낸다면-그렇지, 이 시기는 지나가게 두는 것이야. 어찌 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네- , 세상이 그리워진다네.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친구녀석들도 그립고, 월급날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던 회사 동료들도 그립고, 연애시절부터 화장을 한다, 옷 매무새가 맘에 안 든다며 항상 기다리게 해 놓고는, 마지막에 다 와서는 성질도 급하게 먼저 하늘로 가버린 마누라도 그립고.

 

 그렇게 세상이 그리운 시기마저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아주 예전처럼, 그런 시기가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예전과 같이, 다시금 세상이 궁금해진다네. 요새 사람들은 무엇에 웃고, 무엇에 울며, 또 무엇에 화를 내는지, 내가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은 이제는 나와 같은 늙은이들의 마음 속에만 빛 바랜 사진처럼 남은 건지, 아니면 어린 친구들의 마음 속에도 심어져 있는지 말일세.

 

 그런 것들이…그리고 내가 무엇을 궁금해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새로 태어난 모든 것들이, 몹시도 궁금해 진다네."

                                                                                                         

                                                                                                                                               - 2011.11.17 목요일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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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센트 방과후
겪은 것2013. 2. 21. 23:49

 사당에 있는 대학 동기가 매니저로 일하는 Wow Cafe에서 05학번 동기들인 명래와 영기형과 면용이형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추억에 남는 건 사진하고 일기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내친 김에 전부터 고광일이 만들라고 했던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했다. 서버가 폭파되는 날까지 온갖 이야기들을 끄적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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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센트 방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