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The Forever war), 1975'를 읽었다.
SF물을 읽고 싶다고 하자 SF덕후인 고광일이 빌려준 책이다.
줄거리는 여타 전쟁SF소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종족 '토오란'에 맞서기 위해 인류는 최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갖가지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그들과 맞서 싸우고, 마침내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다(분명 소설 말미에 토오란과의 전쟁이 종결되는데, 책의 제목이 '영원한 전쟁'이라는 것은 곱씹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의 메시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반전(反戰)이라고 할 만하다(개인적으로는 인간에게 있어서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더 와 닿는 주제이긴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작가는 당시 겪었던 끔찍한 전쟁의 참상과, 전쟁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이질감을 SF라는 장르를 통해 개인적 경험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전쟁에 참전한 적은 없으나 그래도 2년 4개월이라는 짧은 군복무를 마쳐서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인공 만델라가 느꼈던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상대성 이론으로 증명되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와 정지해 있는 물체가 겪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물리법칙에 의해 주인공을 위시한 등장인물들이 우주에서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올 때마다 지구는 몇 십년, 많게는 몇 백년이 흐른다. 이로써 주인공과 함께 추억을 나누던 사람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지구의 문화 역시 만델라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만델라는 처절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이 휴고상, 네뷸러 상, 디트머 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하게 된 주요한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고립감을 잘 표현해낸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바로 정도의 차는 있겠으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군복무를 하는 동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예전과 같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나는 차츰 그들에게 잊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괴로웠었기 때문이다. 제대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은 예전의 인간관계를 '대부분' 회복했으며 더 나아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까지 했으나, 입대 전 갖고 있던 추억속의 인간관계는 불가역한 것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떠올리면 일련의 아쉬움과 관계된 감정들이 공진(共振)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결국 객관적인 시간 개념으로 주인공이 태어난 시간보다 약 2000년이나 흘러 주인공과 관련된 것 어느 하나도 지구상에 남게 되지 않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을 맺지만, 그래도 이 소설이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여주인공인 메리게이 덕분이다.
절대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나, 그 순간을 함께 해온 사람, 추억과 추억 외의 모든 것들(괴로운 기억, 절망감, 슬픈 나날들 등)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만큼이나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p.s. 마지막 문단에 사족을 덧붙이자면, 추억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과 현재를 함께 한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더 행복한 일일 것이다.
- - 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저), 1974년작 / 2012.07.16 월요일 00:16